경주 동부 사적지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동서는 안압지로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반월성 남쪽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신라 왕도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반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물왕을 위시한 수십 기에 달하는 신라시대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일대의 면적은 668,121㎡(202,46평)이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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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황금상자에서 태어난 아이, 김알지 [해설] 신라 네 번째 왕인 탈해왕 때 일이었어요. 왕이 잠을 자는데 밤새도록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해요. [탈해] 응? 새벽도 아닌데 웬 닭이 저리도 밤새 운단 말이냐? [해설] 다음날 탈해왕은 신하들과 함께 직접 닭 우는 숲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탈해왕이 울고 있는 닭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는 순간, 닭이 인기척을 느끼고 하늘로 후드득 날아가 버렸답니다. [해설] 대신 닭이 쳐다보던 높은 나무 꼭대기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 상자가 매달려 있었어요. [탈해] 아니, 저, 저게 무엇이냐? 금 상자가 아니더냐? 얼른 저 금 상자를 내리 거라! [해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하늘 어딘가에서 갑자기 온갖 새들이 나타나, 상자 주위로 모여들어 지저귀며 춤을 추었죠. 탈해왕이 금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보니, 안에는 사내아이가 누워 있었답니다. [탈해] 허허. 금 상자 안에서 아기가 나오다니. 기이한 일도 다 있구나. 이 아이는 분명 보통 아기가 아닐 것이다, 필시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야! [해설] 이후 석탈해 왕은 아이를 궁궐로 데려와, 금 상자에서 태어난 아기라는 뜻으로 금알지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중에 금은 김으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김알지 탄생 설화 속의 신라 김알지의 탄생 설화, 어떠셨나요? ‘황금상자 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조금은 비현실적이죠? 이렇게 설화는 인물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비현실적이고 우연적인 전개가 많아요. 하지만 그 내용 속엔 당시의 사상과 역사적 가치들이 담겨져 있어 역사를 보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답니다. 그럼, 김알지의 탄생설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지 살펴볼까요? 설화에는 닭과 황금상자가 등장해요. 닭은 새를 신성시하는 토템사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새를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동물로 생각했는데, 특히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알리는 동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겼어요. 그렇다면 황금상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신라의 유물 중에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금팔찌, 금 허리띠 등 금으로 된 장신구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는데, 당시 금은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는 보석으로 권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 사용되었죠. 이렇게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통해 당시 신라 사람들이 새 토템 사상과 금을 숭배한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신라인의 문화가 북방민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가 있어요. 북방민족은 새를 신성시하고 금을 귀하게 여겼는데,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에겐 금은 재산과 같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죠. 이는 농경사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였어요. 그리고 신라의 독특한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은 북방민족의 매장풍습과 많은 유사점이 있죠. 신라의 화려한 황금유물과 새를 신성시하는 토템문화 그리고 독특한 무덤 양식이 북방민족과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본
가이드 : 앞쪽에 보이는 큰 무덤이 바로 미추왕릉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덤의 주인은 신라 13대 왕을 지냈던 미추왕이에요. 관광객 : 미추왕은 백제의 침입을 물리친 왕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가이드 : 네 맞습니다. 미추왕은 신라의 첫 번째 김 씨 왕으로, 백제의 침입을 막아 내고 농업을 장려하는 등 국력 신장에 힘쓴 왕이에요. 재위 기간에도 죽은 후에도 신라인들에게 성군으로 사랑받은 왕이지요. 가이드 : 미추왕릉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바로 댓잎 군사 설화인데요.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관광객 : 댓잎 군사 설화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가이드 : 신라 초기, 이서국에서 신라를 침입해 수도 금성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때 머리에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들이 몰려와 적을 물리치고 사라진 덕분에 신라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 군사들에게 꽂혀 있던 댓잎이 미추왕릉 앞에 수북이 쌓여있었고, 이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 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이라 부르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관광객 : 미추왕릉에서 죽엽군이 나온 것 같은 정말 신기한 이야기네요. 다른 무덤들도 어서 살펴보고 싶어요.
대본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시기에 건립된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입니다. 천문대는 하늘은 관측하는 곳으로, 고대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죠.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나 하늘의 변화를 신의 뜻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왕이 이를 잘 관측하는 것은 국가를 다스리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답니다. 첨성대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와 술병 모양의 원통부 그리고 네모난 모양의 정상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9m 정도의 높이이죠. 27단으로 쌓인 첨성대의 모양을 살펴보면 곡선이 매우 우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쌓기 위해서 각 단마다 원 둘레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설계했죠. 그런데 왜 둥글게 쌓은 몸체와 다르게, 제일 윗부분은 네모 모양의 정자석으로 마무리했을까요? 바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정자석의 모퉁이를 통해 방위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정자석 안에는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원통부의 뚫려 있는 창문에 사다리를 걸어놓고 정자석까지 올라갔었죠. 한편, 첨성대가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종교적인 숭배물이라는 의견, 천신이 계신 하늘과 자신이 머물고 있는 땅을 연결하는 통로였다는 의견 등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죠. 첨성대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첨성대를 둘러싼 견해들은 각양각색이지만, 첨성대가 뛰어난 건축기술과 과학기술이 접목된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대본
나무로 가득한 이곳은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입니다. 계림은 원래 성스러운 숲이라는 뜻의 ‘시림’이라고 불렸었는데 닭과 관련된 김알지의 탄생설화 때문에 닭이 우는 숲이라는 뜻의 ‘계림’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왜 하필 다른 동물이 아닌 닭이었을까요? 오늘날 닭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인데 말이죠.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신라인들은 새를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알리는 동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고 해요. 이러한 새 토템 사상이 계림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죠. 계림과 연결된 서쪽 솔숲에는 신라 17대 내물왕의 능이 있습니다. 내물왕은 김 씨 중 두 번째로 왕위에 오른 인물로, 내물왕 이후 김씨에 의해 세습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김씨 중 첫 번째로 왕위에 오른 인물은 누구일까요? 시조인 김알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김알지는 왕이 된 적이 없답니다. 김씨가 처음 왕이 된 것은 13대 미추왕 때라고 해요. 신라는 박, 석, 김씨가 돌아가며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내물왕 이후에는 주로 김씨가 왕위를 세습함으로써 총 56명의 왕 중 김씨 왕이 38명이나 됩니다. 비록 왕위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한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존경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김알지는 신기한 탄생 설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계림을 둘러보며 김알지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봅시다.
대본
신라 네 번째 왕 탈해왕 때의 일이었습니다. 만물이 깨어나는 3월의 어느 날 밤, 금성 서쪽의 숲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닭 우는소리가 들려왔어요. 닭이 우는 시간도 아닌데 닭이 우는 것을 보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탈해왕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신하를 보내 살펴보게 하였지요.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신하는 돌아와서 이를 왕에게 즉시 알렸어요. 왕이 시림으로 가서 황금 궤짝을 열어 보자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답니다. 왕은 이 아이를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어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황금 금’ 자를 사용해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김알지 탄생 설화에는 인물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요. 먼저, 황금 상자에서 김알지가 태어날 당시 닭이 울었던 것입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새를 신성시하고 금을 귀하게 여겼다고 해요. 새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동물로 생각했으며, 금은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는 보석으로 권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황금 궤짝이 걸려있던 나무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나무를 의미하는데요. 이는 김알지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는 신화적 요소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기이한 탄생으로 신성함이 강조된 김알지는 왕이 태자로 삼았으나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어요.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가 미추왕이랍니다. 김알지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은 지금까지도 신성한 곳으로 전해오고 있어요. 조선 순조 때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도 남아있으니 꼭 구경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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