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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청보리밭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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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경주의 분황사 주변에는 매년 봄 싱그러운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커플
Couple

해 질 무렵에는 노을에 물든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천년 경주의 매력을 더한다.

가족
Family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솔로
Solo

해 질 무렵에는 노을에 물든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천년 경주의 매력을 더한다.

장소 소개

경주의 분황사 주변에는 매년 봄 싱그러운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추석 직후에 파종한 보리가 이듬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분황사 주차장에서 황룡사지 방향을 바라보면 황룡사 역사문화관을 배경으로 짙푸른 청보리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 질 무렵에는 노을에 물든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천년 경주의 매력을 더한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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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여왕의 향기가 가득한 절, 분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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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향기가 가득한 절, 분황사 [선생님] 이곳은 ‘분황사’예요. [학생] 어. 분황사라면, 선덕여왕 시절에 지어진 절이잖아요. [선생님] 그래요. 분황사라는 이름도 여왕의 향기가 물씬 나는 이름이랍니다. 향기'분'자에 황제 '황'. 황제의 향기가 나는 절이라는 뜻이에요. 634년에 지어졌으니 벌써 천 년이 훌쩍 넘었네요. [학생] 선덕여왕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그렇고, 왠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져요. 이곳이 선덕여왕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선생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신라시대에는 여자가 왕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면, 선덕여왕은 이곳에 스님들을 모셔 놓고 왕실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었다고 해요. [학생] 그렇군요. 아, 그리고 분황사에는 원효 스님도 계셨다고 하던데요? [선생님] 맞아요. 원효 스님은 이곳 분황사에 머물면서 많은 불교 서적을 남겼답니다. [학생] 그런데 원효 스님이 머문 곳이고,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절인데 왜 이렇게 작아요? [선생님] 지금 모습만 보면 그렇지만, 분황사는 본래 무척 큰 절이었어요. 현재까지 이뤄진 발굴조사로 보아 당시 분황사는 인근의 황룡사에 버금가는 크기였다고 해요. 호국사찰인 황룡사와 함께 분황사는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국찰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죠. 하지만 몽골군의 침입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분황사는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지금처럼 국보로 지정된 분황사 석탑과 조선시대에 세워진 보광전만이 남게 되었죠. [학생] 에이. 그럼, 별로 둘러볼 곳도 없겠네요. [선생님] 분황사 안에, 용이 살고 있는 우물이 있는 데도요? 그뿐만 아니라,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는 천수관음보살 설화에다, 원효스님과 그의 아들 설총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답니다. [학생] 용이 사는 우물이요? 설마, 지금도 그 우물 안에 용들이 살고 있나요? [선생님] 그건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해요. 지금 분황사의 입구는 본래 분황사의 입구가 아니에요. 원래 입구는 황룡사가 위치한 남쪽 방향에 있었어요. 현재 황룡사지 터에는 분황사 당간지주가 서 있는데, 당간지주는 절의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신라시대 절은 이 당간지주로부터 시작했어요. 이제, 분황사로 들어서면 분황사 석탑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차례대로 분황사 석탑, 화쟁국사비 받침대, 분황사 우물을 살펴보기로 해요. 그럼 먼저, 분황사 석탑으로 가볼까요?

분황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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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석탑 분황사 석탑은 신라 시대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이에요. 탑은 원래 9층이나 7층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훼손돼 지금은 3층만이 남아 있죠. 분황사 한 켠에는 벽돌 같은 돌들이 많이 쌓여 있는데, 그 돌들은 석탑을 쌓을 때 사용된 돌들이에요. 그럼, 이제 탑 모양을 살펴볼까요? 중국에는 벽돌을 구워 탑을 쌓아 만드는 전탑이 있어요. 분황사 석탑은 이 전탑을 본떠 만들어졌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탑과는 조금 다른데, 분황사 석탑은 벽돌로 쌓은 탑이 아니라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완성된 탑이에요. 그래서 벽돌을 모방하여 쌓았다는 뜻으로 '모전석탑'이라고도 부르죠. 돌들을 일일이 다듬어 탑을 쌓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이렇게 탑 속의 돌들 하나하나에는, 신라인들의 땀과 정성이 담겨져 있답니다. 그럼 이제, 석탑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탑을 보면 동서남북으로 석문이 달려있는 공간을 볼 수 있어요. 이곳을 감실이라 부르죠. 그리고 2층과 3층 사이에는 사리를 넣는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리장엄구와 실패, 바늘, 침통, 가위 등이 발견되었어요. 석문 양쪽에 서 있는 조각상은 신라인의 섬세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인왕상이에요. 인왕상은 악귀를 막아주는 불교의 수호신이죠. 석탑의 모서리에는 사자상을 조각해 세워 두었는데, 사자는 보통 수호의 기능과 함께, 부처님의 계율을 상징한답니다. 그럼 이제, 원효 스님의 흔적을 찾아 석탑 옆에 위치한 비석 받침대로 가볼까요?

분황사에 머물렀던 고승,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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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에 머물렀던 고승, 원효 이 비석 받침대는 ‘화쟁국사비부’라고 하는데, 원효스님을 기리는 비석을 받치던 것이에요. 비록 비석은 사라졌지만 분황사에 머물렀던 원효스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죠. 원효 스님은 불교 교리를 체계화시키고 불교 대중화에 기여하셨어요. 스님은 여기 분황사에 머물면서, 많은 유명한 불교 서적을 집필하셨고, 스님의 가르침은 이 절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해요. 비석은 고려 숙종 때 세워졌는데, 당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을 기리는 시호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불교의 큰 성인이라는 뜻의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웠어요. 하지만 몽골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분황사가 크게 훼손되면서 비석은 손실되고, 이처럼 비석 받침대만 남아있게 되었답니다. 비석 받침대를 자세히 보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은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자, 조선시대 명필이었던 추사 김정희가 쓴 글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분황사에는 스님에 대한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어요. 스님이 죽은 뒤, 아버지를 그리워한 설총이 유골(유해)과 진흙을 섞어 인물상을 만들고, 분황사에 공손히 모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인물상 옆에서 절을 하는 설총을 향해, 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설총을 보았다고 해요. 그 이후, 인물상은 몇백 년 동안이나 고개를 돌린 채 서 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그럼 이제, 용이 살았던 우물로 가볼까요? 우물은 분황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요.

용이 살았던 분황사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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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았던 분황사 우물 [해설] 앞에 보이는 우물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에요. 우물의 외부는 팔각형이고, 내부는 원형으로 되어 있죠? 여기엔 불교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팔각은, 팔정도를 의미해요. 팔정도란, 깨달음을 얻는 세계로 가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방법을 의미하죠. 그리고 내부 원형은, 구별 없이 조화롭게 하나가 된다는 원융의 진리를 담고 있어요. 이 우물에는 세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죠. 그럼, 우물 안에 아직도 용들이 살고 있는지, 한번 들여다볼까요? 신라 원성왕 시절. 분황사의 우물 안에는,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나라 사신이 세 마리의 용을 물고기로 변하게 해, 몰래 통에 담아 훔쳐갔어요. 다음날 원성왕의 꿈에, 두 여인이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지요. [여인1] 전하! 저희들의 남편은 신라를 지키는 용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당나라 사신이 남편을 물고기로 바꾸어버리고, 몰래 잡아가 버렸습니다. 흑흑~ [여인2] 네, 전하! 그자들을 잡아 남편을 되찾아 오지 않으면, 신라는 반드시 당나라의 침공을 받아 패망할 것이옵니다. 흑흑흑~ [원성왕] 헉!!! 무슨 꿈이 이리도 생생할꼬. 호국용을 당나라 사신이 잡아가다니… 안 되겠다. 여봐라! 거기 밖에 아무도 없느냐?!! [해설] 꿈을 이상하게 여긴 원성왕은,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쫓아, 물고기로 둔갑시킨 호국용을 되찾은 뒤, 분황사 우물에 다시 놓아줬다고 해요. 실제로 용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당과 신라의 관계가 끊임없이 대립했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답니다. 분황사에는 이외에도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천수관음보살의 이야기도 있답니다. 그럼, 분황사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천수관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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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천수관음보살 [해설] 천수관음보살은 분황사 왼쪽 건물 벽에 그려져 있었는데, 현재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천수관음보살은 천 개의 눈과 손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자비심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소망을 이뤄준다고 해요. 그럼, 분황사에 모셨던 천수관음 보살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신라 35대 경덕왕 시절 희명이라는 여인의 어린아이가, 다섯 살 때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어요. [아이] 어, 엄마…….나 눈이 너무 아파. 앞이 하나도 안 보여- [희명] 아가, 무슨 소리니 갑자기?! 엄마 여기 있는데 어딜 보고 말하는 거야? [아이] 어, 엄마 내 앞에 있는 거야? 나 너무 무서워 엄마~ [희명] 아가……. [해설] 가슴이 무너지는 희명은 아이를 안고 분황사를 찾아, 천수관음보살에게 빌고 빌었어요. [희명] 천수관음보살님, 빌고 비나이다. 천지를 모르고 뛰어놀던 아이가 빛을 잃었습니다. 제 전생에 지은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제 업보를 벌하시고 아이에게 광명을 찾아 주십시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중에서, 손 하나를 놓아 눈 하나를 덜어내어, 두 눈 다 먼 제 아이에게 하나라도 주소서. 부처님의 크나큰 자비심으로 부디 불쌍한 아이를 굽어살펴주시옵소서. [해설] 천수관음보살이 희명의 애타는 심정을 정말 굽어살펴주신 걸까요? 아이는 눈이 씻은 듯이 다 나았고, 이 소문은 신라 곳곳에 퍼져 분황사는 신비의 절로 신라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고 해요. 그리고 희명이 기도할 때 불렀던 노래는 신라 향가 ‘도천수대비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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