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남해 충렬사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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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커플
Couple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가족
Family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솔로
Solo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장소 소개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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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12구간 노량해전
389
대본

[관음포에 떨어진 큰 별, 이순신을 기억하며 걷는 길] 이순신 승전길의 마지막 구간이자,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노량해전 구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길은 온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고 바다의 별이 된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 숨결, 그리고 그와 함께 끝까지 싸웠던 수많은 영웅을 추모하며 걷는 길입니다. 1598년 음력 11월 18일 밤, 노량의 바다에는 달빛보다 횃불과 불화살이 더 밝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왜란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하려 했고, 순천에 고립된 일본군을 구출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가 노량해협으로 향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진린이 지휘한 명나라 수군은 일본군의 퇴로를 막았습니다. 노량해협은 남해도와 하동 사이의 좁은 바다입니다. 물살이 빠르고 섬과 암초가 많아, 한 번 배들이 뒤엉키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입니다. 밤이 깊어지자 조명 연합 수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북소리와 포성이 어두운 바다를 울렸고, 불화살이 밤하늘을 가로질렀습니다. 기습을 당한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맞섰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마지막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선박들은 조선과 명나라의 배에 가까이 접근해 조총을 쏘고, 배 위로 올라타려 했습니다. 노량의 좁은 바다에서 수백 척의 배가 뒤엉켰습니다. 화포와 불붙은 배에서 나온 연기가 바다를 덮었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혼전이 이어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의 중심에서 북을 울리며 군사들을 지휘했습니다. 지휘관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북소리는 군사들에게 명령이자 용기였습니다. 전투는 밤새 이어졌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일본군의 대형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수군은 달아나는 일본군을 끝까지 추격했습니다. 바로 그때, 일본군이 쏜 총탄이 이순신 장군에게 날아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면 군사들이 흔들리고, 거의 끝나 가는 전투의 흐름이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게 전해집니다. “전투가 한창 급하니 부디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가까이에 있던 아들 이회와 조카 이완 등 일부 사람에게만 알려졌습니다. 장군의 죽음을 숨기고 지휘를 이어간 인물은 기록마다 다르게 전하지만, 대장선의 북소리와 지휘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선 수군은 장군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마지막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북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일본군 함대는 큰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났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에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알려졌습니다. 승리를 거둔 바다에는 환호보다 통곡이 퍼졌습니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승리였습니다. 일본군의 철수 함대는 큰 피해를 입었고, 7년간 이어진 전쟁도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바다는 단순한 승전지가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바다입니다. 이제 승리의 환호와 깊은 슬픔이 교차했던 그날의 바닷길을 차례로 걸어보겠습니다. 이 길은 대장경 판각 문화센터가 있는 고현면 일대부터 관음포 둑방길, 관음포 첨망대, 이순신바다공원, 이락산, 구포미산, 월곡마을, 감암마을, 남해대교 유람선을 지나 충렬사까지 이어집니다.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내려졌다고 전해지는 관음포를 지나, 그 슬픈 운구 행렬의 발걸음을 따라 이순신바다공원으로 이동해 봅니다. 이순신바다공원에서 이락사를 거쳐 유적비와,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첨망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관음포는 지금은 고요합니다. 하지만 1598년 그날 밤에는 포성과 북소리, 불타는 배의 빛이 바다를 가득 채웠습니다. 바다 앞에서 북소리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군은 이미 쓰러졌지만 북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군사들은 지휘관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마지막 북소리가 일본군을 물리치고 7년 전쟁의 끝을 알렸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종착지인 남해 충렬사에 이르면 오늘의 뜻깊은 여정이 모두 마무리됩니다. 이곳 남해 충렬사는 고향 아산으로 가기 전 장군의 유해를 잠시 모셨던 사당으로, 가만히 머리를 숙여 장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좋은 곳입니다. 노량해전 구간은 약 11킬로미터로, 해안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집니다. 난이도는 보통이며 약 3시간이 소요됩니다. 빠르게 걷기보다는 주요 지점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순국 의미를 함께 되새길 수 있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옥포에서 시작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항해는 이곳 노량에서 멈추었습니다. 비록 거대한 별은 바다로 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을 다했던 그의 충절과 수많은 군사들의 용기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푸른 바다 위에 영원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순신 승전길의 마지막 바다, 노량해전 구간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이순신 승전길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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