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수성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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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유형 문화재 제4호인 영영축성비와 제5호인 대구부수성비는 금호강변이 바라보이는 영남제일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영영축성비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대구읍성을 쌓은 내력을 기록한 비이고, 그 옆에 위치한 대구부수성비에는 대구읍성을 보수했던 기록이 새겨져 있어요. 그럼 영영축성비에 새겨진 기록을 한번 들여다 볼까요? 둘레가 약 2.5킬로미터, 높이 약 8미터로 축조된 대구읍성은 성을 완성하기까지 약 5개월의 공사 기간과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는데요. 축성비를 쌓는 데 동원된 공사 인부는 소고군, 연군, 승군, 모군 등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지방 군인이었던 소고군과 집마다 부역에 동원되었던 연군은 농사철이 아닌 겨울에만 동원되었고, 농사철이 되면 승려로 구분된 승군이 대신 성을 쌓았다는 것과 일정한 품삯을 받고 일하는 모군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대구부수성비는 왜 읍성을 쌓게 되었는지, 보수 공사는 왜 필요했는지, 공사하는 데 걸린 기간은 얼마이고 그 규모는 얼마나 되었는지, 동원된 인력과 공사 자재 등의 공급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세밀하게 기록된 귀중한 데이터베이스인 셈입니다. 원래 영남제일관문 앞에 위치해 있던 두 비는 1906년 대구읍성이 파괴되자 옛 달성군청과 대구향교로 옮겨졌다가 1980년 영남제일관이 복원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어요. 영남제일관은 대구를 대표하는 관문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 건축된 대구읍성의 4대문에 속하는 건물인데요. 최초 건축물은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고 영조 때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가 현재는 유일하게 복원된 남문입니다. 영남제일관은 영남에서 제일인 관문이라는 뜻으로 망루에 오르면 금호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요. 그 웅장한 기개에 가슴까지 탁 트이는 것 같습니다. 전군은 한 치도 물러서지 말고 성을 사수하라! 피와 땀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외침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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